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폰소 6세 (문단 편집) == 가족 관계 == 오비에도의 주교 펠라기우스가 집필한 <레온 왕들의 연대기>에 따르면, 알폰소 6세는 총 5명의 아내와 2명의 첩을 두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아내들은 아그네스, 콩스탕스, 베르타, 이사벨, 베아트리체이고, 첩은 무뇨스와 자이다였다. 이들의 신상정보는 다음과 같다. * 아내 * 아그네스(? ~ 1078년?): 피레네 산맥 북쪽에서 작성된 몇몇 연대기에 따르면, 아키텐과 노르망디 공작이며 잉글랜드의 정복자인 [[윌리엄 1세]]의 딸 아그네스가 알폰소 6세와 약혼하여 이베리아로 보내졌지만, 당시 10살이던 그녀가 결혼이 이뤄질 수 있는 14살이 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1078년 6월 6일에 결혼식이 거행되기 전 사망했다고 한다. 12세기 잉글랜드의 연대기 작가 오데리크 비탈리스는 아그네스와 알폰소 왕의 혼인이 1080년 혈연관계를 이유로 무효화되었고, 아그네스는 1109년 메인 백작 엘리아스 드 라 블랑슈와 재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역사가이자 계보학자 하이메 데 살라자르는 메인 백작과 결혼한 여인은 훗날 알폰소 6세의 마지막 부인이 될 베아트리체였다고 주장했다. * 콩스탕스(1048 ~ 1093): 부르고뉴 공작 로베르 1세의 딸. 1065년 샬롱 백작 위그 2세와 결혼했으나 자식을 보지 못했고, 1079년 위그 2세가 사망한 뒤 클뤼니 수도원장 위그의 중재에 따라 알폰소 6세와 재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 여러 자식이 태어났지만 오직 딸 [[우라카]]만 성인이 되었다. * 베르타(? ~?): 기원이 명확하지 않다. 계보학자인 서볼치 드 바예이(Szabolcs de Vajay)는 그녀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의 아내인 사보이아의 베르타의 조카인 사보이아 백작 아마데오 2세의 딸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1095년 4월 28일자 왕실 기록에 처음으로 언급했고, 1099년 11월 17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기부한 기록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되었다. 1100년 1월 25일 알폰소 6세가 죽은 아내를 기리기 위해 사하군 수도원에 기부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볼 때, 1099년 11월에서 1100년 1월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 이사벨: 1100년 초 알폰소 6세와 결혼한 여인. 베르타처럼 기원이 명확하지 않다. 서볼치 드 바예이 등 많은 학자들은 알폰소 6세의 정부 자이다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했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불확실하다. 13세기의 학자 루카스 드 루이는 이사벨의 묘비명을 인용하면서 프랑스 국왕 [[루이 6세]]의 딸이라고 주장하지만, 루이 6세는 1104년에 로슈포르의 루시엔과 결혼했다가 3년 후에 자식을 보지 않은 채 이혼하고 1115년에 사보이아 백국의 아델라이드와 결혼하여 9명의 자식을 봤기 때문에, 1100년 초에 알폰소 6세와 결혼할 딸을 낳는 것은 불가능하다. 펠라기우스에 따르면, 이사벨은 산차와 엘비라를 낳았다고 한다. 산차(1102 ~ 1125년 5월 이전)는 카스티야 백작 로드리고 곤잘레스 데 라라와 처음 결혼했다가 이혼한 뒤 우르겔 백작 에르멘골 6세와 재혼했으며, 엘비라(1103 ~ 1135)는 [[시칠리아 왕국]]의 초대 국왕 [[루제루 2세]]와 결혼했다. * 베아트리체(? ~ ?): 1108년경 알폰소 6세와 결혼한 여인이다. 스페인의 역사가이자 계보학자 하이메 데 살라자르에 따르면, 이 여인은 아키텐 공작 기욤 8세의 딸이며, 메인 백작 엘리아스 드 라 블랑슈와 결혼했다가 사별한 뒤 알폰소 6세와 재혼했다고 한다. 펠라기우스에 따르면, 알폰소 6세는 베아트리체와 결혼해 자식을 좀더 낳으려 했으나 끝내 그러지 못한 채 1109년 7월 9일에 사망했고, 베아트리체는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 정부 * 히메나 무뇨스(? ~ 1128): 펠라기우스에 따르면, 그녀는 매우 고귀한 신분이며 아그네스 사후 왕의 정부가 되었다고 한다. 17세기 역사가 루이스 알폰소 데 카르발로는 갈리시아 백작 무니오 로드리게스와 레온 국왕 [[베르무두 2세]]의 손녀인 히메라 오르도녜스의 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카날 산체스 파긴은 아스투리아스 백작 로드리고 무뇨스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사볼치 데 바예이 등도 이 주장에 동의하며, 로드리고 무뇨스의 아내는 무니오 로드리게스의 딸일 거라고 추정했다. 히메나는 알폰소 6세와의 사이에서 엘비라 알폰세스[* 1079년 ~ 1157년 4월 이후, 툴루즈 백작 레이몽 4세와 초혼, 카리온 백작 페르난도 페르난데스와 재혼]와 [[테레사 데 레온]]을 낳았으며, 알폰소가 콩스탕스와 결혼한 후 궁정에서 물러나 프리아란자 델 비에조 마을의 영주로서 활동했다. * 자이다(1070 ~ 1093 또는 1107): [[알 안달루스]]의 무슬림 역사서에 따르면, 세비야의 타이파 알 무타미드의 아들 아부 알 파타 알 마문의 아내였다고 한다. 기독교측 사료에는 알 무타미드의 딸이었다고 하지만, 학자들은 무슬림 측 기록이 좀더 신빙성 높다고 본다. 세비야가 무라비트 왕조에게 공략당한 뒤, 그녀는 톨레도에 망명했다가 알폰소 6세의 정부가 된 뒤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이사벨로 개명했다. 다수의 학자들은 그녀가 1093년 알폰소 6세의 유일한 아들인 산초 알폰세스를 낳았기 때문에 나중에 정실 아내가 되었을 거라고 추정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펠라기우스는 그녀가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다고 기술했지만, 산초 알폰세스를 낳다가 죽었는지 아니면 다른 아이를 낳다가 죽었는지는 명시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